
스노우볼
뱌누
“이쪽으로 오세요, 나리.”
“알았다, 어린 사공아.”
덩치큰 북부인이 냉큼 작은 나룻배로 몸을 던졌다. 출렁! 하며 소금기어린 바다물이 한차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와아앗, 그 덩치로 뛰시면 가라 앉는다구요.”
“흥, 이 배가 작은 거다.”
“네, 네. 작은 배니까 조심해주세요.”
자신의 딴지를 능청스레 흘려넘긴 사공의 말투에 그녀가 호쾌한 얼굴로 미소지었다. 손님이 제대로 앉은 상태인 것을 확인한 사공은 천천히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갔다.
“전사니임~”
“잘 다녀오십쇼, 투사나리!”
“저흰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커다란 배에 남은 일행들을 일별한 그녀는 도착지점에 갈 때까지 느긋이 뱃머리에 머리를 기댔다. 이내 작은 사공과 대화라도 나누고 싶었던 걸까. 투사가 드물게 사공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어린 사공아.”
“저 어린 애는 아닌데요.”
“알았다, 작은 사공아. 지금 우리가 어디 가는지 알고 있나?”
“저는 모르죠. 나리께서 의뢰하신 목적지로 배를 몰고 있을 뿐이니까요.”
“우리는 내 언니의 주검이 묻힌 섬으로 간다.”
아.
사공의 입에서 한차례 탄성이 나온 뒤 대화가 이어졌다.
“많이 친하셨나요?”
“목숨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만큼.”
“유감이네요.”
“유감은 무슨. 되려 호상에 가깝다. 우리 부족 중 이렇게 따뜻한 남쪽에 묻히는 자는 아마 내 자매가 처음이겠지.”
“그렇구나….”
사공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맞은편의 북부인을 바라보았다. 그 반응에 그녀는 씨익 웃은 뒤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손에 턱을 괴곤 물었다.
“어린 사공아, 가족이 있나?”
“아니요.”
“그럴 것 같았다. 표정이 꼭 경험한 바 없어 어찌 반응해야할지 모르는 자의 것과 닮아있었으니.”
“티가 날 줄은 몰랐는데….”
“딱히 티가 나진 않았다. 다만… 너와 비슷한 아이를 이미 한번 만나본 적이 있어서 알아 본 거다.”
“그런가요…?”
사공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볼을 긁적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 지금의 자유로움이 나쁘지 않아요. 가족이 있었다면 주거지를 쉽게 바꾸진 못했을 테니까.”
“이곳 토박이가 아닌 모양이군?”
“예에. 저는 바다가 좋거든요.”
바다와 닮은 푸른 눈에, 파도와 같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자가 수더분하게 웃으며 말했다. 바닷바람에 그슬리고 해에 적당히 익은 피부가 잘 어울리는 청년이었다. 말하지 않았다면 남쪽 토박이라고 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으리라.
“어째서 바다가 좋지?”
“그냥요. 시원하고, 넓고… 어릴적 어떤 분에게 들은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거든요.”
“이야기?”
“네. 첫인상과 다르게 정말이지 다정한 분이셨는데, 저와 바다가 닮았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해서 마차값과 숙박비를 모아 남쪽에 정착했습죠. 기왕 사는거 마음 가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는 청년의 말이 투사의 귓가를 울렸다. 그녀는 드물게도 애석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희한하군. 내 동료 중에도 유독 아이에게 다정한 이가 있었는데.”
“그런가요? 좋은 분이시네요.”
커다란 배를 타고 오는 내내 조용한 분위기를 풍기던 그 회색머리의 기사님을 말씀하시는 걸까. 사공은 그리 생각하며 어느덧 가까워진 섬에 배를 대고 땅에 박힌 말뚝에 밧줄을 감았다.
“와.”
그 후 뒤돌아본 섬은 아름다웠다.
팔랑거리며 햇빛 속을 노니는 나비의 날개, 선선한 바닷바람을 타고 노니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것은, 봉긋 솟아오른 둔덕에 빼곡이 피어나있는 노란색 꽃이었다.
“갯씀바귀네요.”
그 꽃이 퍽 익숙한 꽃이었던 지라, 사공이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이내 전사가 몸을 굽혀 무덤가에 핀 꽃들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아는 꽃인가?”
“바다에서 살면 자주 보는 꽃이죠. 바닷가 근처에 유독 많이 피고, 먹을 수도 있고요.”
“…이걸 먹는다고?”
“네. 전 좀 쓰지만요.”
사공이 콧등을 찡그렸다. 언뜻 제 나이보다 성숙해보였던 그가 어린아이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장난기가 돋은 투사는 제 자매의 무덤에 자란 잡초를 뽑던 도중 씀바귀를 하나 떼어 먹어보았다.
“무덤에 피어난 걸 드셔도 돼요? 선배들이 먹지 말라던데.”
“겁 많은 자들의 미신일뿐, 독을 먹고도 버틸 수 있는 자가 바로 노르다 전사다.”
“우와….”
“그리고, 자연에 순리에 따라 흙으로 돌아갔을 뿐인 유골이다. 무엇이 두렵겠나.”
“…그것도 그러네요.”
전사의 말에 설득이라도 된건지, 사공 또한 그녀를 따라 무덤가에 핀 금빛 씀바귀를 손질하여 입 속에 넣었다. “…써요!” 그 맛에 탄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순리였다.
그래, 쓰지.
호쾌한 전사의 웃음소리가 바다를 메웠다.
- 주근깨 심부름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