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보라빛 추상
보쯔
이제는 옛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해안가를 걸었다. 이 도시에는 그의 젊은 시절과 열정이. 그리고 추억이 여전히 남아 있거늘.
느린 산책길을 멈추게 한 것은 작은 꽃송이였다. 늘그막에 걱정만 늘게 만드는 불효막심한 손자의 눈동자를 꼭 닮은 보라빛의 작은 꽃망울이 바닷바람에 흔들렸다. 형태마저 밤하늘을 그리며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다가 그 눈에 품어버린 것 마냥 꼭 닮아있었다. 그리고 생각은 이어져 별꽃을 닮은 영혼에 닿았다. 대양을 품고 하늘을 빛으로 수놓은 별무리를 피워낸 고결하고 상냥한 영혼을. 그 생에 다시 없을 사람이었다. 그저 그런 이가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 세상에 희망이 있을 것임을 믿게할 정도로.
대현자는 멈추었던 걸음을 재차 재촉했다. 여즉 몸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산책길에 올랐다는 것을 알면 걱정할 이가 눈에 훤하여 오랜 시간을 머물지 못했다. 처리해야 될 업무가 눈에 밟힌 것도 없잖아 있기도 하였다.
그 뒤로도 시간이 날 때면 대현자의 발걸음은 야화가 흐트러진 해안가로 향했다. 봄볕에 피는 보라빛의 별꽃을 보며 흘러간 시간을 떠올려보는 것이 소소한 낙이 되었다. 밤하늘에 뜬 별이 나아갈 길을 알려준다면 낮에 핀 별꽃은 그가 과거의 길을 더듬어 나아가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그가 지나온 발자취마다 별꽃 하나를 헤아리며.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억세게 자란 야화는 그의 삶과도 닮아있었다. "늙으면 생각만 많아진다더니."
그리 말하는 대현자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어느덧 보라별꽃으로 이루어진 길의 끝에 서서 뒤를 돌아본 노인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눈을 빼앗을 만큼 화려하지도 누구나 홀릴 정도로 향기롭지는 않아도 햇볕을 따라 피어나는 작은 별들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들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어 새로운 꽃이 피어날 터였다.
평소보다 이르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가로 향한 대현자는 아직 꽃망울이 맺힌 야화를 보고 적당한 바위를 찾아 엉덩이를 붙였다. 제가 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눈에 담긴 작은 별을 보고 그저 지나치지 못했던 탓인지 눈이 가는 작은 꽃이었다. 몸이 자랐음에도 여전히 걱정되고 속 썩이는 손자지만 거센 바닷바람과 소금끼 가득한 거친 돌틈에서도 스스로 피어날 봄을 기다릴 줄 아는 인내를 가진 놈이었으니까. 그 고약한 성질머리만 떠올리면 골이 아파왔다. 그래도 평생 친구 하나 못 사귈 것만 같더니 제 스스로 별을 찾을 줄은 몰랐다. 천운도 제 운인게지. 제 별님을 따라 여행길에 오른 손자 걱정에 타들어 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가 중천에 떠오를 즈음이 되서야 꽃잎을 펴고 보란듯이 하늘거리는 보라별꽃을 눈에 담았다.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난 대현자는 재건이 한창인 도시로 되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