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 Bloom
김엘뺌
“요즘 에드니엄에서 오는 사람들이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미아의 물음에 요한나가 눈을 데굴 굴렸다. 대답이 조금 늦고 말았으나 미아는 알아차리지 못한 눈치였다. 다행이다. 안 들켰구나. 요한나가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생각에 잠겨 있던 탓에, 미아는 그 수상하다면 수상한 기색 역시 눈치채지 못했다. 미아는 깨끗한 천 위에 에드니엄에서 날아온 사탕을 거꾸로 쏟아부으며 대꾸했다.
“다 날 보며 웃잖아.”
도시 간 교류와 보고서를 가장한 연애편지를 주고받는 횟수가 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편지를 배달하려면 전령이 필요하다. 한 번 두 도시를 왕복하고 나면 휴식이 필요하기에 전령은 매번 다른 사람이 되곤 했는데,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저만 보면 웃는 것이다. 그동안은 입꼬리나 눈꼬리만 희미하게 실룩이는 정도에 그쳐 확신하지 못했으나 어제 온 전령은 저를 보자마자 온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워 모를 수가 없었다.
그 웃음 속에 비웃음이나 음흉한 속내가 깃들어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그런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첫 연애를 시작한 손주를 보는 듯한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분명 레온과 관련이 있는 일일 터인데, 레온이 보낸 편지는 평소와 다른 점이 없었다. 편지에 동봉한 꽃을 품은 사탕에도 사탕 통 바닥에도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그러면 대체 뭐가 문제일까. 요한나는 사탕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피던 미아가 사탕을 다시 주워 담는 모습을 보며 재차 가슴을 쓸어내렸다.
불행히도, 이번에는 그 모습이 미아의 눈에 들고 말았다. 미아의 눈이 대번에 날카로워졌다.
“요한나, 뭔가 알고 있구나.”
“아, 아니? 내가 뭘? 아무것도 모르는데?”
펄쩍 뛰며 고개를 내저은 요한나는 마지막 음절이 혀끝을 떠나자마자 볼 안쪽 살을 콱 깨물었다. 큰일이다.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게 굴었다. 틀림없이 눈치챘겠구나. 요한나의 생각대로 뺨을 찌르는 시선이 한층 더 따가워졌다.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요한나를 빤히 바라보던 미아는 곧 고개를 돌리고 서류를 집었다. 얼마간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글자를 써 내리던 미아가 입을 열었다. 요한나가 어느 정도 긴장을 풀었을 무렵이었다.
“우리 이번에 에드니엄이랑 시작한 공사 있잖아. 꽤 크고 중요한 공사였지.”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 평범한 내용.
“그런 편이지?”
“그럼 내가 그 진척도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에드니엄에 가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렇지만 그 내용은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화제가 바뀌었다는 사실에 안심한 요한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렇…… 뭐? 잠깐. 잠깐만!”
“네가 말해주지 않는다는 말은, 사정을 아는 다른 사람들도 나한테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겠지. 그럼 내가 뭘 할 수 있겠니.”
나한테는 죽어도 저항하지 못하는 레온을 탈탈 터는 수밖에 없지.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귀가 간지럽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을 님을 떠올리는 벚꽃색 눈동자가 곱게 휘었다.
“설명할 수 있어! 지금 당장은 못 하더라도, 나중에는! 미아! 제발!”
미아는 뒤꽁무니에 따라붙는 요한나의 비명을 무시하고 당장 마구간으로 달렸다. 미아를 붙잡으려 뻗은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정말 지금은 안 되는데…….”
성주성 성문을 빠져나가는 말과 말꼬리처럼 하나로 올려 묶은 검은 머리카락을 보며 통탄스레 중얼거린 요한나는 유능한 보좌관답게 곧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에드니엄에 보낼 전서구며 전령을 찾아 에드니엄 쪽에 미아의 급습 소식을 띄운 것이다. 그러나 미아가 타고 나간 말은 성에서 가장 빠른 말이다. 뮌문트 출신 군마의 피를 이어받은 말에 올라탄 미아는 요한나가 날려 보낸 급보가 닿기도 전에 에드니엄에 도달했다.
경비가 신원을 확인하고자 할 때는 속도를 늦추었으나 그 뒤로는 일말의 머뭇거림조차 없었다. 미아는 저를 보며 고개를 숙이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다시 성주성을 향해 달렸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번개처럼 도시를 가로질렀다.
“방금 캄버러 소성주님 아니었나?”
“설마. 그분이 왜 여기 계시겠냐.”
“이상하다. 맞는 것 같은데…….”
그렇게 미아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쭉 빼는 기사들을 지나치고.
“엇, 언제 오셨어요? 어디 가세요?”
저를 보며 아는 체를 하는 레온의 보좌관을 지나치고.
“아, 미아 님.”
말을 타고 들이닥친 그녀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허리 숙여 인사하는 집사를 지나쳐.
“미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제 연인 앞에 당도했다. 레온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비비다가도 미아가 말에서 훌쩍 뛰어내리자 미아를 받아 안았다. 미아는 그 목을 끌어안고 뺨에 입을 맞추며 땅에 사뿐히 내려서더니만, 곧장 레온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쿵 소리가 났다.
“여기까지 웬일이야? 앞으로 한 달은 못 볼 줄 알았는데.”
레온은 벽과 미아 사이에 낀 모습이 되어서도 그저 좋은지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며 웃었다. 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온 건 아닌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바지런히 뺨을 쓸어 보고 안색을 살폈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속에 슬그머니 걱정 한 조각이 피어올랐다. 아무리 반갑다지만, 아무리 연인이라지만. 그래도 내가 연락도 없이 들이닥쳐선 자길 벽에 밀어붙이고 있는데 이렇게 경계심이 없어서 어쩌면 좋지. 미아는 손을 들어 레온의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놓았다. 어쩌긴 뭘 어째. 내가 평생 지켜 줘야지.
짧은 걱정을 털어 버리고, 미아는 그녀를 에드니엄까지 들이닥치게 만든 바로 그 질문을 꺼냈다.
“뭘 꾸미고 있는 거야?”
“뭐가?”
“에드니엄 사람들이 나만 보면 웃던데.”
“아.”
고운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하도 반가이 맞아 주어 숨기는 게 없는 줄 알았더니, 반가움에 잠시 잊었을 뿐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미아의 눈이 샐쭉하니 가늘어졌다.
당연히도, 레온은 그 눈을 앞에 두고 저항할 방도가 없었다. 물론 시도는 했다. 눈까지 질끈 감아 가며 어떻게든 시선을 피해 보려 애를 썼다. 그러나 미아가 흐음, 하고 목을 울리면 어떠한 비난도 협박도 없는 그 소리만으로도 제 가장 내밀한 비밀까지 털어 놓아야 할 듯한 기분이 드는데, 무력한 그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우리 두 달 뒤에 결혼식 올리잖아.”
짧은 저항 끝에 패배하고 만 레온이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드디어. 마침내. 그 모든 사건과 역경을 딛고 결혼식 날짜를 확정 지은 것이 석 달 전이었다. 모종의 사건이며 그 뒷수습 때문에 결혼식이 미뤄지길 몇 달. 참 오래도 참았다. 그런데 그게 왜? 계속 말해 보라며 고개를 까딱이는 미아 앞에서, 레온은 손끝을 꼼지락거리며 중얼중얼 말을 이었다.
“결혼식 때 입는 예복도 걸치는 장신구도 다 부모님 걸 물려받잖아.”
“그렇지. 그게 전통이니까.”
“그래서 내 손으로 뭐라도 해 주고 싶었어.”
“뭘 해주려고 했는데?”
“내가 키운 꽃으로 부케를 만들어 주려고 했지.”
이런 이유였구나. 미아는 그간 에드니엄의 전령들이 짓던 미소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야 결혼식을 앞둔 연인 중 한쪽이 제 손으로 키워낸 꽃으로 부케를 만들겠다며 손수 꽃을 심고 가꾸는데, 아무리 목석같은 이라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겠지.
다만 무언가 문제가 있는지 레온의 낯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왜 그래. 말해 봐. 미아는 레온의 팔뚝을 살살 다독이며 설명을 종용했다.
“제일 예쁜 꽃으로 고르려고 했는데, 꽃이 피긴 했지만 다 시원찮아서…….”
그렇게 우물거린 레온은 미아의 손을 잡아 정원 한쪽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새로이 만든 화단과 화단 가득 소담스레 피어난 색색의 꽃이 있었다.
유일한 문제는 그 꽃들의 상태일까. 언뜻 보았을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던 꽃은 가까이서 들여다보자 상태가 좋지 않았다. 최악은 아니나 적어도 자신 있게 내놓을 만한 상태는 아니다. 꽃잎 끝은 마르거나 짓무르기 직전이고 꽃송이도 작다. 레온은 힘없는 손길로 옆에 있던 물뿌리개를 들어 마른 흙을 적셨다.
“비료나 영양제도 이것저것 써 봤는데, 예전에 비류호가 있을 땐 잘만 피던 꽃도 상태가 영 안 좋아. 나한테는 식물을 다루는 재능이 없을지도.”
그 능력만이라도 남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말에 미아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 입에 담기도 싫은 짐승 새끼가 사라진 이후, 레온은 손끝만 닿아도 식물을 가장 싱그럽고 어여쁜 상태로 키워내던 능력을 잃었다. 애초에 그 짐승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전부 치가 떨릴 정도로 싫었으니 아쉽지도 않았다. 땅이 계속해서 메마른 채였다면 또 모를까. 땅은 악마기사라는 이름의 모험가와 그 모험가의 부름을 받고 대산림에서 찾아온 신수 덕에 푸르름을 되찾지 않았나.
그 의견에는 레온도 동의했건만. 고작 꽃 몇 송이 때문에 저리 아쉬워하는 눈치라니. 미아는 입매를 슬쩍 비틀었다가 원래대로 되돌렸다. 뭐 어쩌겠나. 비류호 자체를 그리워했다면 정신 차리라며 호통을 쳤겠지만, 비류호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 능력이 필요할 뿐이라는데. 게다가 그걸 필요로 하는 이유가 그녀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란다. 짧게 치밀어 올랐던 화가 입에 넣은 설탕 과자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미아는 비류호를 언급한 일로 레온을 핀잔하는 대신 화단 한쪽을 가리켰다.
“이건 지금 피는 꽃이 아니야. 용케 피웠네.”
“그, 그래?”
미아가 가리킨 꽃은 앞으로 반년은 있어야 개화 시기가 돌아오는 꽃이었다. 그런 꽃을 지금 심다니. 이래서야 정말 꽃을 피운 것만으로도 기적이 아닌가. 레온은 그의 생각과는 달리 원예에 꽤 재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응. 그리고 다른 꽃도 다 피는 시기가 제각각인걸. 왜 이 꽃들을 골랐어?”
“꽃말이 좋아서…….”
변치 않는 사랑. 당신을 사랑하는 행복. 꽃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꽃말을 조곤조곤 속삭이던 입술은 이내 가지런한 치아 아래 꾹 짓눌렸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레온은 흘깃, 미아의 눈치를 살폈다.
“음, 역시 나보다는 전문가가 키운 꽃이 좋겠지?”
더 시도해 보기야 하겠지만,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이런 시들시들한 꽃을 들 수는 없잖아……. 흐릿하게 부스러지는 목소리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묻는 모습이 어찌나 우습고 사랑스러운지. 미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레온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한참이나 웃은 끝에, 미아는 여전히 웃음기가 함빡 묻어나는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아니. 네가 키운 꽃으로 만들어 줘.”
제 연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피워낸 꽃이라는데 그 상태가 무슨 상관인가. 말라비틀어져 톡 치면 부스러질 꽃을 들고도 행복할 텐데. 미아는 팔에 힘을 주며 콩, 레온의 등에 이마를 기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