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노우볼
뱌누
“대현자에게 축복을.
세상을 떠난 이에게 안식을.“
엄숙한 분위기 가운데 붉은 머리의 용사가 주관하는 장례가 시작되었다. 그의 눈은 깊은 슬픔을 담고 있으되 흔들리지 않았고, 그와 함께하던 스승의 웃음처럼 다정하되 물렁하지 않았다.
이내 그를 닮은 힘 있고 확신에 찬 목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기도합시다.”
“기도합니다.”
그에 따라 식장에 모여있던 다른 이들이 용사의 말을 따라 기도문을 읊었다. 개들중에는 녹빛 머리의 청년, 태양빛 머리의 투사, 회빛머리의 신관, 세기의 발명가.
요정과 보라뱀, 잉걸불의 마지막 자손 등등, 그녀를 아는 모든 이들이 함께 했으니.
이내 붉은 머리의 용사가 위령미사를 시작했다. 조문을 위해 방문한 사람들의 숨죽인 숨소리, 향처럼 타오르는 촛불의 잔향을 헤치며 선명한 목소리가 공기 속을 파고들었다.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신이시여, 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제가 비는 소리를 귀여겨 들으소서.
신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그 역시 감당할자 누구이리까.
오히려 용서하심이 당신께 있사와 더더욱 당신을 섬기라 하시나이다.
제 영혼이 신을 기다리오며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밤의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제 심장이 당신을 더 기다리나이다.
낮의 파수꾼이 북극성을 기다리기보다 제 영혼이 당신을 더 기다리나이다.
당신께옵서는 자비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음이오니
신께서는 그 모든 죄악에서 저희를 해방하시리이다.
신이시여. 세상을 떠난 모든 이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신이시여.
당신의 목자가 기도하느니,
그러면 우리가 복될 것이오.
그렇게 복될 것이며,
그래도 복될 것이고,
그리고 복될 것이니.
그럼에도 복될 것이고.
그리하여 복될 것이며.
하지만 복될 것이기에.
저는 이 삶이 다할 때까지 기도하나이다.
우리가 영겁토록 복되기만을.“
용사는 기도를 마치며 흰 국화를 관에 놓을 때까지 눈물을 참았다.
이제 막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뀔 나이였으나, 그는 아직도 그가 경애해 마지않던 스승처럼 강인하진 못했다.
끝은 웃는 얼굴로 보내주라던 그의 마지막 말이 이상하게도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그가 모든 아이에게 친절했음은 그의 성숙한 나이탓이 아니라, 지치지 않는 노력 덕분이란 것을 요즘에서야 깨달았기에.
하여 용사 또한 끊임없이 노력하리라. 무덤께에 자라난 현자의 이명을 닮은 노란 수선화조차 귀이 여기리라.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그리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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